벨라 루고시가 출연한 1931년작 <드라큘라>
공포영화 혹은 호러영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저 멀리 유럽에 있는 루마니아에서 전세계로 이름을 알린 드라큘라가 아닐까. 영화의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자신을 알린 공포영화의 아이콘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드라큘라 백작 만큼 여러번 리메이크 되고 전 세계에 명성이 자자한 캐릭터도 드물 것이다. 드라큘라와 뱀파이어는 최근에 와서 10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까지 이어오는 그야말로 서양을 대표하는 문학 텍스트 중 하나이다. 게다가 흡혈을 하며, 햇빛과 마늘, 그리고 십자가를 두려워하는 그의 특징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대부분이 알고 있을 스테레오 타입이다.
1931년작 <드라큘라>에서 열연하고 있는 벨라 루고시
드라큘라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최고의 명성을 얻은 배우는 바로 벨라 루고시일 것이다. 그는 헝가리에서 1882년에 태어난 배우로 그는 드라큘라를 연기한 것이 아니라 드라큘라 그 자체라고 불릴 정도로 드라큘라의 심볼이 된 배우이다. 그가 출연한 1931년작 <드라큘라>는 드라큘라라는 괴기 소설 속 인물과 벨라 루고시라는 이름을 널리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영화 이후에 드라큘라가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가 지금까지도 제작되고 있다. 내가 우연히 중학교 때 보았던 벨라 루고시의 드라큘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요즘이야 미국의 슬래셔 무비나 일본의 호러무비 등의 임팩트 있는 영화들이 많지만, 그 당시 봤던 드라큘라는 어린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 충분했다. 물론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영화라 약간은 어설픈 면도 보이지만, 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영향이 짙게 남아있는 이 영화는 요즘의 호러무비에서와는 다르게 빛을 적절하게 컨트롤 하여 그림자와 흑백화면의 극단적 콘트라스트를 통해 관객의 공포 심리를 극대화하고 있는 수작이다.
하지만 그가 영화판에서 계속 성공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다. 1930년대 영국에서 호러무비를 금지하면서 그는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기존의 B급 호러에서 다른 장르의 B급 영화로 바꾸게 된다. 그 뒤로 몇 개의 작품을 찍었고, 다른 캐릭터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A급 영화에도 출연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미지 자체가 드라큘라로 박혀버렸기 때문에 그의 변신은 쉽지 않았다. 결국 말년에는 그의 광팬이자 영화 역사상 최고의 괴짜 감독인 Edward Wood를 만나 몇개의 영화를 더 찍지만 에드 우드와의 작품 활동은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며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결국 그는 1956년 8월 16일 심장마비로 자택에서 쓸쓸하게 숨졌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의 장례때 그의 시신이 드라큘라 백작의 코스츔을 입은 채로 묻혔다는 것이다. 그는 그에게 최고의 명성과 후에 잘 풀리지 않았던 인생을 동시에 만들어준 드라큘라가 되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팀 버튼의 영화 <에드우드>중에서 에드우드 감독와 벨라 루고시
얼마 전 Ed Wood라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 곳에 등장하는 에드워드 우드 감독과 벨라 루고시를 보며 그들을 다시 추억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고 세상에 자신을 던진 사람들이다. 평탄치 못했던 그들의 삶에 측은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바보같은 그들의 모습이 가장 멋있는 모습이 아닐런지. 사람들은 똑똑하고 멋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세상이 굴러간다고 믿겠지만, 세상을 더 풍요롭게 하고 재밌게 만드는 역할은 바로 수많은 괴짜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벨라 루고시의 드라큘라를 다시 보고싶은 마음이다. 그의 송곳니와 망토 속에 담긴 그의 용기를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